‘가난함’과 관련해서 갑자기 ‘심령이 가난한 자(the poor in spirit)’들이 복 받을 거라는 예수님 말씀이 생각납니다. 형편이 가난해서 몸이 힘들면 ‘가난한 심령’의 상태를 유지하기가 매우 힘들어지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심령이라는 말은 물질적 빈곤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마음을 뜻하는게 아닙니다. 기독교 식으로 말하면 ‘영적 가르침을 원하는, 혹은 갈구하는’ 상태입니다.
저는 유물론과 유심론이 양 극단이며, 두 기둥이라고 봅니다. 어떤 사람에게 영혼이 깃들고 그 사람의 몸이 수명을 다 했을 때 그 영혼이 새로운 상태로 바뀌는 그런 종류의 일들은 모두 두 기둥의 사이 어딘가에서 벌어지는 일들이겠지요.
이번 주의 카드에서는 특별히 중요하다거나 주목할 만한 사건이 보이지는 않습니다. 여러분의 일상을 정성껏 이어가시면 되겠습니다. 반복되는 일상이 나를 지치게 만든다고 느끼는 건 공통되는 현상이고 특별히 어떤 사람에게 어떤 일이 곧 나타날 거라고 알려주는 조짐 노릇을 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싫어도 아침에 제때 일어나고 싫어도 다른 사람들과 부대끼며 전철이나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합니다. 그게 바로 일상입니다. 그걸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각자의 주머니에 이런 저런 소득들이 들어와 있게 마련입니다. 사회적으로도 이런 저런 일에 관심 갖지 말고 각자의 일을 하라고 강요하는 분위기가 형성될 수 있지만, 새삼스러운 일은 아닙니다.
‘심령이 가난하다’는 표현은 오히려 마음에 여유가 있음을 뜻하는게 아닐까도 생각해 봅니다. 여유가 없으면 작은 생채기 하나에 온 ‘심령’이 쏠려버릴 테니까요. 이번 한 주가 끝날 때 쯤에는 여러분 각자가 뭘 갖고 있는지 한번 되돌아 보시면 되겠습니다. 생각보다 훨씬 많을 수 있습니다.

(일/금전)
전체운의 모습과는 조금 다르게, 여러분이 하는 일에서는 시점이나 아이디어를 놓칠 수 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조급함과 과욕입니다. 갑자기 생각나서 보니 마감 시한이 임박했다 같은 사정일 수 있습니다. 그럴수록 침착하게, 할 수 있는 일과 아무리 발버둥쳐도 할 수 없는 일을 지혜롭게 구분하면 되겠습니다. 모든 걸 다 해내겠다며 지나치게 허둥댈수록 사고가 날 확률은 높아집니다.

(애정/감정)
인간관계는, 특히 애정을 바탕으로 한 인간관계는, 내 마음대로만 돌아가지 않습니다. 더 오래 함께 하고 싶지만 어떤 시점이 되면 자리를 떠서 잠시 각자의 생활을 해야 합니다. 함께 있을 때는 처음에는 배도 고프지 않다고 느끼겠지만 좀 지나면 배가 고파지는건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종류의 현상에 대해 스스로를 자책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 다시 문득 고개를 돌리면 사랑하는 사람이 보일 테니까요.

(쉼/힐링)
고마운 일을 해 준 분들에게 고맙다는 표현을 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진심으로 나를 도와주는 분들은 흔히 인사치레 같은 걸 굳이 바라지 않긴 하지만, 그래도 직접 만나서 내가 가진 감사하는 마음을 일종의 기운으로 바꿔서 전해드린다면 도와주는 분들의 기쁨은 훨씬 커지고, 그와 함께 나 자신의 몸과 마음도 제법 큰 회복 효과를 누릴 수 있으니까요.

이번 주는 여기까지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한 주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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